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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형의 GEEK'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한국 입시생이었다면 |
[해외리포트] '창의적 기업' 명함도 못 내미는 한국 기업... 주범은 '교육제도' |
나는 한국의 교육 제도를 비교적 잘 아는 편이다. 첫 '논술 세대'로서 수많은 입시제도의 변화를 몸으로 겪은 피해자이기도 하고, 이후에는 입시학원 강사로서 학생들을 괴롭히는 '가해자' 역할을 해 보기도 했다.
중학교 때에는 비교적 인간적인 분위기의 공립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는 '명문대 입학'이 유일한 교육철학인 사립학교를 나왔다. 이 '명문고'는 음악·미술·체육 시간을 모두 국영수 수업이나 자습으로 대체했고, 수학여행도 보내지 않았으며, 평일 밤 늦게까지 전교생들을 잡아두는 것은 물론, 주말과 휴일에도 불러내어 '자율학습'을 시키곤 했다.
학생들을 웃는 얼굴로 구타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한 교사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뜨는 해를 안고 등교하고, 지는 달을 안고 귀가하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이냐?" 세월은 대책없는 낙관론자여서, 돌이킬 엄두도 내지 못할 고통스러운 경험조차 '추억'으로 바꾸어 놓곤 한다. 하지만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세월의 미화 작용조차 손을 쓸 수 없는 악몽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창의적인 회사' 명함도 못 내미는 한국 기업
나는 간혹 고등학교로 되돌아가는 꿈에서 깨어난다. 교사들의 폭언과 구타는 어제 일처럼 생생하며, '학력제고…'라는 말로 시작되던 교장 선생님의 근엄한 훈시는 지금도 환청처럼 들려온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은 공포를 자아내던 교실의 체벌도, 지루한 운동장의 조회도 아니다.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즐겁게 사색하며 창의적으로 공부할 수 있던 시간들을 무의미한 '정보 쑤셔넣기'로 허비했다는 사실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까운 젊은 날을 말이다. 시험 한 번이면 날아갈 그 휘발성 암기를 위해서.
'청소년 시절은 대입을 위해, 대입은 취직을 위해, 취직은 승진을 위해….' 우리는 이와 같은 목표 지향적 사고에 익숙하다. 하지만 초중고등학교 시절은 '예비인생'이 아니라, 그 자체로 소중하게 누려야 할 삶이다. 한국인의 턱없이 낮은 행복지수는 과정을 과정으로 누리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가 낳은 비극이다. 잠시 서서 숨쉴 틈도 주지 않는 이 사회가 성공적으로 양산하는 것은 임종 침상에서 느끼는 덧없는 후회뿐이다.
그러나 더 한심한 것은, 이런 무의미한 입시교육이 개인은 물론 한국 사회에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탬이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4월 28일자 <비즈니스위크>는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회사(Most Innovative Companies)' 25개를 뽑았다. 놀랍게도 이 가운데 한국 기업은 단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과거에는 기업의 자산이나 매출 규모가 기업을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창의력이나 혁신을 기업의 미래를 예측하는 핵심 잣대로 보고 있다.
공룡처럼 군림하던 거대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도산하는 오늘의 기업환경에서 당연한 일일 것이다. 덩치 큰 기업들보다 애플·구글·아마존·닌텐도 등의 '영리한' 기업들에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즈니스위크>가 꼽은 기업들은 애플· 구글·도요다·닌텐도·아마존·혼다·타타 자동차·페이스북(Facebook) 등이다.
물론 미국에 본사를 둔 <비즈니스위크>의 서구 중심 사고가 반영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닌텐도와 도요다 등 일본의 기업 4개가 포함되었고, 200만원대 자동차를 내놓아 화제가 된 인도의 타타 자동차가 포함된 것은 이 조사가 일정한 합리성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즈니스위크>의 이 연례조사는 보스턴 컨설팅그룹·로이터스·컴퓨스태트·블룸버그 등이 제공한 정보를 종합해서 평가한 것이다.
유통업체 월마트와 '미국판 사이월드'라 불리는 페이스북까지 포함된 목록에 한국의 유수 기업이 명함도 못 내밀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번 <비즈니스위크>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는 시금석이자, 한국 입시 교육이 지닌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지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입시 교육 : 개인은 불행, 사회는 퇴보
과거 '영어병이 한국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글에서 취업에서 강요되는 영어 공부로 인해 대학생들이 전문 지식을 쌓지 못하고 사회로 나가는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영어가 필요하지도 않고, 어학에 재능이나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조차 무차별적으로 영어능력을 강요함으로써 한국의 경쟁력이 도리어 저하된다는 이야기였다. 이처럼 영어학원화한 대학교에 들어오기 전, 학생들이 거치는 고등학교 과정은 창의력이나 비판적 사고를 키울 수 없는 획일적인 입시 교육이다.
이런 한국 교육 제도에서 경쟁력 있는 사람이 길러질 것을 기대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가? 놀랍게도 '경제대통령'을 표방하고 집권한 이명박 대통령은 경쟁 체제의 입시 교육을 확대 강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학생 당사자와 사회에 모두 도움이 되지 않는 이 '미친 짓'을 반복하겠다는 것이다.
초등학생부터(요즘은 유치원부터라고 들었다) 고등학교까지 모든 교육과정을 지옥으로 만들 때 이익을 보는 것은 자신들의 무능을 '선발'로 만회하려는 대학들의 알량한 자존심뿐이다. 대입에 종속된 고등학교는 대학들의 기싸움에 놀아나지 않을 수 없으며, 이 과정에서 학원은 돈을, 정치인들은 경쟁 체제에 매몰되어 정치 의식을 잃은 '순한 국민'을 부산물로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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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경쟁력 없는 것으로 잘 알려진 한국의 대학들은 수학능력의 차이가 없는 우수한 고등학생들을 시험제도만 바꾸어 괴롭히고 있다. 대학과 교육당국이 입시 제도를 1년이 멀다하고 바꾸는 것은 자신들에게 '변별력'에 대한 아무런 합리적 기준이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국의 소위 '명문대학'들은 기껏해야 '세계 100대 대학'을 자랑스러운 장기 목표로 내세우지만,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세계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인재들이 아닌가.
외국의 유수 대학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는 한국 학생들의 출신 학교를 조사해 보면 한국을 지배하는 '명문대'와 '비명문대'라는 구분이 얼마나 근거 없는 허구적 기준인지를 알 수 있다. '시장지배자'로 군림하는 일부 대학들이 소비자들을 좌우하는 상황은 '자유시장경제체제'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입시제도 개혁은 선택권을 학생들에게 돌려줌으로써 현재의 '공급자 시장'을 소비자 시장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학위가 아니라 개인의 능력에 따라 기회를 주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학력 차별을 성 차별이나 장애인 차별처럼 야만적인 행위로 만들 때에만 한국 교육은 비로소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창의적 인재들을 대학에 가두는 사회
창의적인 기업으로 평가받는 곳의 최고경영자들을 보라. 애플의 스티브 잡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 이들의 공통점은 대학졸업장이 없다는 사실이다. 최근 하버드 대학이 빌 게이츠에게 명예 학사 학위를 주긴 했지만, 그는 대학을 스스로 그만둔 후 돌아가지 않았다.
특히 아이포드와 아이폰, 맥북 에어 등을 내놓으며 '창의적 기업' 1위에 오른 애플사의 최고경영자인 스티브 잡스를 보자. 그의 학력은 대학을 한 학기 다니다 중퇴한 것이 전부다. 그런 그가 대학에서 들었던 수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꼽는 것은 무엇일까? 청강으로 들었던 서예 수업이다. 그는 이 경험을 토대로 애플의 상징이 된 매킨토시의 예쁜 글자체를 개발한다.
잡스는 학교를 그만두고 회사에서 돈 몇 푼을 모아 인도를 방랑하며 돌아다니다가 삭발을 하고 미국으로 되돌아왔다. 한국적 기준으로 보면 '엘리트'나 '모범생'과 거리가 먼 대책 없는 백수였던 셈이다. 그러나 그는 이 시기가 오늘의 자신을 만든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스티브 잡스가 한국의 입시 제도를 거쳐 대학교를 나왔다면 지금의 그가 될 수 있었을까? 그가 한국에서 대학을 중퇴했다면 삼성이나 엘지의 최고 경영자가 될 수 있었을까? 그가 한국 기업에 입사했더라도 지금 내 주머니 속에 아이포드 터치가 들어있을 수 있을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한 것 같다. 중공업 경제 시대의 낡은 교육을 받은 '불도저 세대'들이 재기발랄한 '아이포드 세대'를 가르치고 그들의 교육 제도를 입안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가 미래를 억누르는 것, 이것이 한국의 비극이다.
"차라리 놀리는 게 낫지 않아?"
"참 이상해."
"뭐가?"
"난 고등학교 시절에 놀면서 대학에 들어갔고, 내 친구들도 다 그래."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들들 볶이는데, 대학생들을 놓고 보면 영국 학생들보다 특별히 더 똑똑한 것 같지 않아."
할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하며 술잔에 무안한 입을 대는 순간 친구가 한 마디 보탠다.
"결국 똑같아질 거면, 차라리 놀리는 게 낫지 않아?"
꽤 오랜 세월이 지나 그 친구와는 연락이 끊어졌고, 나는 그 지겨운 공부를 업으로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 사이 한국은 아이들이 더 못 노는 세상이 되었다.
가끔 내가 사는 미국의 대학 도시에 '기러기'라는 이름으로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들을 만나곤 한다. 생각과 달리, 이들은 자녀 교육에 대단한 욕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숨 막히는 입시교육을 잠시 떠나, 남을 배려하고 창의력을 기르는 교육을 받게 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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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학생들이 한국의 학교를 떠나는 이유는 그곳이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당사자와 부모를 괴롭히고,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안 되는 어리석음을 왜 되풀이해야하는가? 이 곳에서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은 대개는 매우 고통스러워한다. '지옥 같은 한국의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제발 학교를 즐겁게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라. 이제는 그것이 '경쟁력'이고 '실용'이다.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게 왠지 불안하고 불편한가? 그것은 당신의 두뇌가 낡은 경제 체제, 낡은 교육 제도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구글이나 픽사처럼 소비자의 마음을 통째로 사로잡는 회사에 가보라. 이들의 공통점은 노는 것과 일하는 것이 구분이 안 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자유로운 상상력이 숨 쉴 수 있게 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현대 경제의 기반이고 교육의 미래다.
제발 아이들을 놀려라. 그것이 아이들과 한국 사회를 모두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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